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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바산 옛 싸움터(사이카 접전)유적

지도를 본다

아키바산 옛 싸움터(사이카 접전)유적
아키바산 옛 싸움터(사이카 접전)유적

오다노부나가의 일대기 “노부나가 전기” 에의하면 1570년이후 오사카 혼간지(절)를 계속 지탱해 온 사이카무리는 노부나가 군의 공격을 면할 수 없었다. 1577년 2월22일 노부나가는 사쿠마 노부모리, 하시바 히데요시, 아라키 무라시게 들의 용장을 이끌고 사이카무리가 숨어있는 아키바산을 공격했다. 이 산은 해발73미터의 작은 산으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유일하게 열린 동쪽에는 수량이 풍부한 와카가와(강)이 흐르는 요새였다. 선봉에서 공격해 오는 호리 히데마사의 기마대는 힘껏 강을 타 올라 갔지만 사이카무리가 강가에 울타리를 치고 강 밑에 단지를 묻은 탓에 다리가 빠져 꼼짝 못하고 대기하고 있던 사이카무리 철포대에 저격당해 많은 무사를 잃어 퇴각했다. 그 후 싸움은 반드시 사이카무리에게 유리하지 않았지만 교토의 정세불안도 있어 노부나가는 3월21일에 사이카진을 물러나 아즈치성으로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사이카무리는 싸움의 화살과 탄알에 부상당한 다리의 통증도 잊고 기뻐하며 춤을 추었는데 이것이 사이카춤의 기원이라고 한다. 지금도 기슈 도쇼구(궁) 와카마츠리의 연목으로서 전해지고 있다.

아키바산 비석

아키바산 비석
아키바산 비석

아키바산 입구에는 ① “겐뇨고승임적” 의 비석과 ② “미로쿠지산” 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기슈에 있어서 혼간지(절)파 승려는 1476년에 가이난시 시미즈에 창건되어 1507년 가이난시 쿠로에에 이전 1550년에는 산으로 옮겼지만 1563년 겐뇨고승이 이곳에 와서 와카야마시 사기노모리에 이전을 명했다. ①비석은 이 경과를 기념하여 혼간지(절)가 세워진 것이다. 그 후에도 이 산은 혼간지(절)의 개인소유의 산으로서 “고보산” 이라고 불렸지만 1938년 와카야마시가 남쪽계곡 2.7ha를 물려받아 공원을 개설하고 1950년에는 그위에 북쪽봉우리6.6ha를 물려받아 시설에 충실을 기했다. 이 산을 “아키바산” 이라고 부른 것은 1793년 라칸지(절) 승려가 시즈오카현에서 아키바곤겐(신)을 권청하여 산기슭에 당을 지어서 오래전부터 “미로쿠지산” 이라고 불리며 그것은 옛날 이 산에 있던 천대종의 고찰 이름에 의거한다고 한다. ②의 비석은 공원을 개설함에 있어 와카야마시가 역사적 고칭을 현창한 것이다.

겐뇨고승휴게소 비석

겐뇨고승휴게소 비석
겐뇨고승휴게소 비석

녹색편암 높이 약3미터의 비석. 전서체로 “겐뇨고승卓錫所(타쿠샤쿠쇼)” 라고 새김. 겐뇨고승은 혼간지(절)제11대문주, 샤쿠(錫)는 승려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 타쿠(桌)(卓의 다른 문자)는 꽂는다는 뜻으로, 모두 겐뇨고승이 이곳에 와서 발자국을 남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겐뇨고승은 1570년 이후 오다 노부나가를 상대로 11년에 걸친 혼간지(절)접전을 한 인물이지만 1580년4월 오기마치천황의 칙명화의(화해명령)를 받아들여 오사카 혼간지(절)을 퇴거하여 절터를 기슈 사기 노모리(현재 와카야마시)로 옮겨 이후 3년간 이 터에 거주했다. “오타니 혼간지통기” 에 의하면 1563년2월 겐뇨고승은 이즈미를 거쳐 기슈에 와서 이 산에 있던 승려를 사기노모리로 옮겼다고하고 기슈 승려의 사기노모리 이전에 있어서 그가 이 터를 찾아온 것은 확실하다. 이 비석은 1891년에 겐뇨고승의 300회기를 맞아 11년에 걸쳐 혼간지접전을 평화적으로 수습하여 교단의 안태를 생각한 그의 공적을 찬양하여 이 지방의 단가들이 건립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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